미국장로교 국내선교부

교회 갱신, 교회 개척, 선교적 협력

[첫째칸] 목자들이 싸우면 양들이 고통받습니다


목자들이 싸우면 양들이 고통받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연합과 화합을 위한 호소)

심수영 목사 | PCA MNA 한인사역 코디네이터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에서는 승리의 목표가 분명합니다. 우리 팀이 이기려면 상대 팀은 져야 합니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결혼에 관한 흥미로운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이기든지, 아니면 함께 지든지 하는 유일한 경기다.”

얼마나 옳은 말입니까!

생각해 보면, 배우자를 상대로 이기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결혼할 때 하나님과 여러 증인 앞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서약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배우자를 사랑해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이겨야 할 경쟁자로 여기게 된다면, 설령 말다툼에서 이겼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한 승리이겠습니까?

건강한 결혼생활은 서로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세워지고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원리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또 하나의 거룩한 공동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장로교회와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도록 복수의 장로들에게 영적 지도력과 치리의 책임을 맡기셨다고 믿습니다.

PCA 헌법인 『교회헌법(Book of Church Order)』 7-2에 따르면, 강도장로(Teaching Elder)와 치리장로(Ruling Elder)는 함께 교회의 정치와 영적 감독의 책임을 감당합니다.

이러한 복수 지도체제는 서로 권력을 나누어 경쟁하도록 만든 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의 은사와 지혜를 보완하고, 상호 책임을 지며,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위험을 방지하고, 함께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도록 주어진 제도입니다.

담임목사는 교회의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며, 치리장로들은 목사를 고용하여 자신들의 뜻을 실행하도록 하는 이사회도 아닙니다.

목사와 장로는 같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이며, 같은 양 떼를 맡은 목자들이고, 동일한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 특별히 당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열, 주도권 다툼에 관한 소식은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얼마 전 저는 여러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PCA 한인교회 가운데, 담임목사와 장로들이 한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평안하고 화목하게 교회를 섬기는 당회가 있습니까?”

놀랍게도 아무도 선뜻 한 교회를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비공식적인 대화였을 뿐이며, 화목한 당회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신실하게 협력하며 아름답게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많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침묵은 제 마음에 무거운 질문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의 영적 지도력을 얼마나 건강하게 실천하고 있을까요?

저는 오늘날 우리 교회의 갱신과 부흥이 단순히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사역 전략, 또는 더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데서 시작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출발점은 우리의 회개와 겸손, 그리고 주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원하시고 기도하셨던 하나 됨을 향한 순종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이렇게 간구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요한복음 17:21)

주님의 이 기도에서 교회의 연합은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간절히 구하신 중요한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인 목사와 장로들 사이의 분열을 우리는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1. 분열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교회는 담임목사의 교회도, 장로들의 교회도, 설립자의 교회도, 영향력 있는 몇몇 교인들의 교회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사도행전 20:28).

그런데 목사와 장로들이 당회를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권한을 확보하거나, 개인적인 뜻을 관철하기 위한 싸움터로 만든다면, 우리는 누구의 교회를 섬기고 있는지 잊어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했습니다(고린도전서 1:10).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고린도전서 1:13)

이 질문은 오늘날 모든 당회에서 다시 들려야 할 질문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hn Chrysostom)는 에베소서 강해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권력을 사랑하는 것만큼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없다.”

오늘날에도 깊이 새겨야 할 경고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진리를 수호하고, 원칙을 지키고, 교회를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물론 진리와 원칙을 지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속에 교만과 분노, 원망과 두려움, 혹은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높인다고 하면서 그분의 몸 된 교회를 함부로 상처 입힐 수는 없습니다.

2. 분열은 성도들을 낙심시키고 다음 세대를 교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목자들이 싸우면 양들이 고통받습니다.

성도들은 당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의 내용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흐르는 긴장감은 쉽게 감지합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고, 목사와 장로들 사이의 관계가 불편해 보이며, 때로는 성도들마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영적 안식처가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불안과 염려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는 이러한 모순에 민감합니다.

교회에서는 사랑과 용서, 겸손과 화해를 설교합니다. 그런데 정작 목사와 장로들이 서로 대화하지 않고, 상대방을 비난하며, 교회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젊은 세대는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정말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짐 데이비스(Jim Davis)와 마이클 그레이엄(Michael Graham)이 쓴 『The Great Dechurching』은 미국 교회가 직면한 심각한 현실을 보여 줍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과거에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했지만 더 이상 출석하지 않는 미국 성인이 약 4천만 명에 이릅니다. 연구 당시 미국 성인 인구의 약 16%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이사나 생활환경의 변화, 신앙적 확신의 약화, 교회 출석 습관의 변화 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에서 경험한 갈등과 상처, 실망도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이 모든 현상을 교회 지도자들의 갈등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경험한 고통스러운 관계가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특히 다음 세대의 신앙 계승과 미래의 목회자 양성이 시급한 한인교회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과연 어떤 교회를 물려주고 있습니까?

당회 안에서의 싸움에서는 이겼을지 모르지만, 정작 우리가 돌보아야 할 다음 세대의 신뢰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승리이겠습니까?

3. 분열은 세상을 향한 복음의 증거를 훼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주님께서는 세상이 우리를 제자로 알아보는 가장 중요한 표지로 교회 건물의 크기나 교인 수, 프로그램의 수준, 또는 신학적 지식의 깊이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관계 자체가 복음의 증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권력 다툼과 분열, 소송과 비방으로 세상에 알려진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은혜로 변화된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의 다른 조직들과 다를 바 없이 경쟁하고 다투는 집단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물론 교회의 평판을 지킨다는 이유로 잘못을 감추거나 불의를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연합은 진리와 정의, 책임 있는 치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정당한 의견 차이까지 개인적인 전쟁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의 하나 됨과 세상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믿게 되는 일을 연결하셨습니다.

교회의 연합이 복음 선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합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능력을 세상에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4. 분열은 지도자 자신의 인격을 무너뜨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빼앗습니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갈등에는 우리가 쉽게 놓치는 또 하나의 피해자가 있습니다.

바로 갈등에 참여하고 있는 목사와 장로들 자신입니다.

목회자나 장로가 오랜 갈등에 사로잡히면 마음속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납니다.

상대방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방어적이 되며,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받고, 모든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기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예배의 기쁨이 줄어듭니다. 사역이 점점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어느새 “어떻게 하면 형제를 더 잘 섬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하면 내 입장을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번에는 내가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앞서게 됩니다.

야고보서 3:16은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반면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며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이 가득하다고 말씀합니다(야고보서 3:17).

교회 갈등의 큰 위험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데 몰두하다가 정작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성도의 공동생활(Life Together)』에서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께서 주신 형제자매들보다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목사와 장로들에게 꼭 필요한 통찰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향한 훌륭한 비전과 이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함께 섬기는 형제를 무시하고 미워하며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이미 복음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5. 분열은 양 떼를 돌보는 목양의 사명을 약화시킵니다

장로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회의에서 이기거나, 예산을 통제하거나, 교회 정치를 주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베드로전서 5:2–3)

그런데 당회가 분열되면 엄청난 시간과 정서적·영적 에너지가 목양이 아닌 갈등을 관리하는 데 소모됩니다.

회의는 길어지고, 중요한 결정은 지연되며, 성도들을 돌보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고, 연약한 성도를 세우며,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어려움을 겪는 가정을 돌보아야 할 지도자들이 정작 내부의 갈등에 매여 있게 됩니다.

심지어 당회가 자기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양 떼의 형편을 잊어버리는 일도 생깁니다.

그러므로 복수 장로제는 단순히 여러 사람이 모여 투표하는 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함께 목양하고, 함께 책임지고, 함께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6. 분열은 교회의 본래 사명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9:37–38).

오늘날 우리 교회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교회 출석 인구의 감소, 세대교체의 어려움, 다음 세대 목회자 부족, 가정의 위기, 그리고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지역사회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세우는 일이 어느 때보다 시급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안에서 몇 년씩 계속되는 지도자들의 갈등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재정, 기도와 영적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습니까?

지도자들이 서로의 권한을 놓고 다투는 동안에도 추수할 들판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지 논쟁하는 동안에도, 우리 주변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한마음으로 서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고 권면했습니다(빌립보서 1:27).

이것이야말로 당회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목사와 장로들은 서로 다른 은사와 성격, 경험과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안을 놓고 진지하게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대적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의 경쟁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명을 함께 감당하는 동역자들입니다.

회개와 갱신을 향한 부르심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연합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안에 의견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어려운 대화를 피하거나, 잘못을 덮거나, 정당한 문제 제기를 억압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한 당회에는 솔직한 질문과 진지한 토론, 상호 권면과 책임 있는 치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성경의 진리와 겸손, 사랑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향한 공동의 헌신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4:2–3은 우리에게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며,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은 **“힘써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연합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의도적인 순종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초대교회 교부 키프리아누스(Cyprian)는 교회의 연합을 설명하면서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오는 여러 가지와 하나의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물줄기의 모습을 사용했습니다.

이 비유는 교회의 연합이 단순히 사람들의 의견 일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함께 누리는 생명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정치력이나 타협만으로 연합을 만들어 내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에 주신 하나 됨을 신실하게 지키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목사와 장로들에게 드리는 다섯 가지 실천적 도전

특별히 교회의 당회를 구성하여 함께 섬기고 계신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께 다섯 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기 전에 자신부터 회개합시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십시오.

내 안에 교만과 분노, 원망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혹은 이기적인 욕심은 없는지 하나님께 물어보십시오.

시편 139:23–24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단지 나의 주장이 옳은지를 묻는 데 그치지 말고, 나의 태도와 마음이 그리스도를 닮아 있는지도 물어야 합니다.

둘째, 불편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먼저 다가갑시다.

당회 안에 관계가 불편하거나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개인적으로 만남을 요청해 보십시오.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이해받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필요하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님, 우리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생긴 데에는 저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가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또는,

“목사님, 그동안 제 말과 태도 때문에 어려움이 있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우리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셋째, 동역자로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회복합시다.

당회에서 개회기도와 폐회기도만 형식적으로 드리는 데 그치지 맙시다.

서로의 삶과 가정, 영적 형편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진심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합시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형제의 아픔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린 사람을 적으로 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당회는 단순한 행정 회의가 아니라,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영적 지도자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정직하고 존중하는 대화의 문화를 만듭시다.

서로를 험담하거나, 인신공격을 하거나, 교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함께 약속합시다.

의견 차이가 있다면 정해진 자리에서 정직하고 직접적으로 대화합시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교회의 헌법과 정당한 절차를 따릅시다.

적법하게 내려진 결정을 단지 내 뜻과 다르다는 이유로 뒤에서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양심의 문제를 억압하거나, 잘못을 은폐하거나, 정당한 이의 제기와 권징 절차를 막아서도 안 됩니다.

참된 연합은 진리를 희생해서 얻는 평화가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다섯째, 당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목양임을 회복합시다.

당회 회의 시간의 상당 부분을 성도들의 영적 형편을 살피는 데 사용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함께 나누어 보십시오.

  • 지금 우리 교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성도는 누구입니까?
  •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고 있는 성도는 없습니까?
  • 격려와 돌봄이 필요한 가정은 어디입니까?
  • 우리 자녀들과 다음 세대의 영적 형편은 어떻습니까?
  • 하나님께서 앞으로 목회자로 부르실 만한 젊은이들은 누구입니까?

우리 당회가 단순히 교회를 운영하는 의결기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양들을 사랑하는 목자들의 공동체로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실천해 봅시다

저는 모든 당회에 한 가지 구체적인 도전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30일 안에 당회 모임 한 번을 오직 영적 성찰과 관계 회복을 위해 사용해 보십시오.

그날만큼은 예산이나 건축, 행사나 행정적인 안건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함께 요한복음 17:20–23, 빌립보서 2:1–11, 베드로전서 5:1–4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서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오.

  1. 우리는 서로를 경쟁자로 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함께 양 떼를 돌보는 동역자로 대하고 있습니까?
  2. 우리 사이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불신은 없습니까?
  3.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목사와 장로들 사이의 사랑과 연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요?
  4. 우리의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 바꾸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5.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가 본받고 싶어 하는 당회가 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양 떼를 함께 돌보겠다는 헌신을 새롭게 하십시오.

맺는말: 목자들이 함께 걸어갈 때

처음에 말씀드린 결혼의 비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결혼생활에서 한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이기려고 하면 결국 두 사람 모두 패배하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목사가 장로들을 이겼다고 합시다.

또는 장로들이 담임목사를 이겼다고 합시다.

과연 누가 이긴 것입니까?

성도들이 이긴 것입니까?

교회의 사명이 전진한 것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와 장로들이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고, 용서하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기도하고 섬길 때 아름다운 일이 일어납니다.

성도들은 신실한 목양이 주는 평안과 안정감을 누리게 됩니다.

다음 세대는 복음이 실제 관계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게 됩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더욱 신뢰할 만한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그리고 지도자들 자신도 그리스도를 함께 섬기는 기쁨을 회복하게 됩니다.

시편 133:1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 말씀이 우리 모든 당회의 간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한인 목사님들에게 “목사와 장로들이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겸손하고 화목하게 교회를 섬기는 당회를 아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여러 교회의 이름이 즉시 나오는 것입니다.

그 교회들에 의견 차이나 갈등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의견이 달라도 서로 원수가 되지 않고, 지도력을 행사하면서도 군림하지 않으며, 자신의 승리를 추구하기보다 함께 그리스도를 섬기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당회의 가장 위대한 승리는 한 장로가 다른 장로를 이기는 것도, 목사가 장로를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목사와 장로들이 서로 사랑하고 함께 섬김으로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성도들이 돌봄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전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우리 교회의 갱신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참고 자료

  • 성경: 요한복음 13:34–35; 17:20–23; 시편 133편; 고린도전서 1:10–13; 빌립보서 2:1–11; 에베소서 4:1–6; 야고보서 3:13–18; 베드로전서 5:1–4.
  • PCA 교회헌법(Book of Church Order): 제7장, 제8장, 제12장 — 장로의 직분과 당회의 권한 및 책임.
  • Jim Davis & Michael Graham, The Great Dechurching: Who's Leaving, Why Are They Going, and What Will It Take to Bring Them Back? (2023).
  • Dietrich Bonhoeffer, Life Together (1939).
  • John Chrysostom, Homily 11 on Ephesians.
  • Cyprian of Carthage, On the Unity of the Church, 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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